야설

자지와 보지 이야기 -단편

소라바다 1,030 10.08 14:20
쭉 뻗은 각선미 위로 풍만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가는 여자들만 보면 아랫도리에 뻗쳐오는 힘을 느끼면서도 사회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돌리는 남성 회원님들께 특히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이글을 여성 회원님들이 읽고 분노 할 수도 있으므로 글은 이렇게 시작하겠습니다.

 

공론의 모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그대로의 세상의 질서, 즉 우리가 사는 사회의 질서가 고유에서건, 소설 같은 문체에서건 독특한 금지의 의미를 지니며 그것에 따른 의무나 제재가 함께 존중되고 있어 위반, 전복, 광기보다는 팽배한 심리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지배와의 관계들, 권리와 특혜, 그리고 그 특권과 불공평성을 가지고 세워진 질서가 그토록 쉽게 정착하여 존속되고 있으며 가장 용납 할 수 없는 조건들인데도 마치 가장 쉽게 허용되고,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인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런 공론의 모순을 자연적이고 임의로 바꾸어 놓은 우리 남자들의 애달픈 노력을 들추어 보겠습니다.

 

모계 사회의 종족 번식과 양육에만 관심이 있던 남자들은 점점 소속 집단이 안정되고 지능이 발달하자 들녘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만 봐도 불끈불끈 아랫도리에 생동을 느끼는 성욕이 본능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종족 보존의 본능으로 여자들의 발정기에만 씹을 하던 남자들은 힘의 우위를 앞세워 언제나, 어디서건,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자지와 보지의 차별성과 거기에 따른 질서를 생각하지 않고 보지와 자지의 속성과 씹 할 때의 체위만을 우주를 주관하고 있는 대립적 총체 속에 끼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앉으면 감추어진다는 "좌장"에서 유래된 자지와 걸을 때는 감추어진다는 "보장"에서 유래된 보지, 즉 남, 여 성기 명칭도 마찬가지입니다.

"습" 에 기원을 둔 씹과 "조"에 어원을 둔 좆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의 대립에 따른 사물들과 행위들의 분리는 고립된 상태에서는 자의적이지만

높고 낮음, 위와 아래, 앞과 뒤, 오른편과 왼편, 곧음과 구부러짐, 건조함과 축축함, 단단함과 물렁거림, 간간한 것과 무미건조함, 밝음과 어둠, 바깥과 안, 닫힘과 벌어짐, 가득 참과 빔, 녹색과 붉은색, 태양과 달, 고인 물과 흐르는 물, 섬과 뉘어짐, 북과 냄비, 밀과 보리, 봄과 가을, 밭둑과 고랑, 움직임과 고정, 엽총과 외양간 등의 동질적 대립 체계 안에 끼워 넣어짐으로써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필요성을 부여받는데 그 대부분이 위와 아래, 밖과 안, 나감과 들어옴이라는 남·여의 성기 차이와 씹 할 때의 신체의 움직임에 서로 상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면서 유사한 이 대립들은 실제적 전이와 은유의 지치지 않는 단어의 유희 속에서, 또 그 단어들의 유희로 서로를 지원할 만큼 충분히 지원합니다.

또한 그 각각의 대립에 조화로움과 함축된 의미와 상응 성에 의한 다원적 결정의 소산으로 점점 무게와 파장을 크게 합니다.

그리고 보편적 적용이라는 이러한 사고들은 겉보기에는 모두가 한결같이 자연스러운 상이성의 체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의 노력은 이 사고들을 소속을 정해줌과 동시에 존재 가치를 객관적으로 검증된 자연스러운 상이성인 것처럼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사고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끝없이 주지시켜 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금의 우리는 원인과 결과가 완전히 전복됨에 따라 힘의 관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의미 관계의 적용처럼 느껴져 우리의 사고들이 어떻게 우리 의식 속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즉, 이 질서는 이미 널리 알려지고 파악, 검증된 공식인 것처럼 인식되어 정착된 사회를 이끌고 나가면서 점점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산적이건 비생산적이건 노동에서의 성적 구분을 중재로 한 모든 사회질서 속에 서 이러한 사고들을 합법화 시키기 위해서 부족한 부분들은 기원 신화들을 제시하여 도움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최초의 인류라고 주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므로 그들과 동기 동창 관계에 있는 다른 민족의 신화를 소개하겠습니다.

 

" 최초의 남자가 최초의 여자를 만난 곳은 샘터였습니다.

 

여자가 샘물을 긷고 있을 때, 자기와는 다르게 생긴 생김새에 흥미를 느껴 거만하게 다가가 마실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여자도 이상한 모양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녀 역시 목이 말랐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기분이 상한 남자는 힘의 우위를 앞세워 그녀는 밀쳤습니다.

 

그녀는 미끄러져 땅바닥에 넘어지며 탐스러운 허벅지를 벌리게 됩니다.

그때 그 남자가 그 여자의 보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튀어나와 있는 물건과는 달리 그것은 인어같이 매끈한 허벅지 깊숙한 곳에 닫힌 성문의 틈처럼 일직선으로 찢어져 있었습니다.

그 밑으로 작은 구멍이 금붕어 새끼 입 같이 벌어져 벌름거리고 있는 것을 신기하게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있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아랫도리에 달고 다니던 물건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남자는 당황하며 자신의 부풀어 오르는 물건과 여자의 벌어져 있는 허벅지 깊숙한 곳을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여자는 교활하게 웃으며 남자에게 말을 합니다.

 

"누워. 네 아랫도리에 부풀어 있는 물건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가르쳐 줄게"

 

그는 호기심으로 땅에 길게 드러누웠습니다.

여자가 일어나 부드러운 손으로 그의 자지를 만지자 그것은 갑자기 2배로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자지가 커지자 "깔깔깔" 웃으며 그것을 움켜쥐고는 자신의 금붕어 입같이 벌름거리고 있던 구멍에 집어넣고는 풍만한 엉덩이를 아래위로 일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처음으로 등골을 타고 내려 발끝까지 저리게 하는 쾌감을 맛보았습니다.

자신의 물건에서 활화산 같은 것이 터지며 분출되어 여자의 구멍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도 느꼈습니다.

남자가 느낀 이 쾌감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그는 이 쾌감을 느끼기 위해 여자를 어디든지 쫓아다녔습니다.

여자는 자기는 전혀 모르고 있는 불이라는 것도 일으켜 보여주었고 날것도 익혀 먹는 방법도 알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남자는 최초의 여자에게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와 씹을 하는 횟수는 늘어났지만 언제나 자기는 누워 있고 그 여자만 위에서 요분질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능동적인 남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 역시 네게 보여 줄 것이 있어. 나도 뭔가 할 줄 알아. 누워봐."

 

여자는 누워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 남자가 그 위에 올라타고는 자지를 밀어 넣었습니다.

 

"아아. 좋아 죽겠어. 이전하고는 너무 달라,"

 

그랬습니다.

자기가 남자 몸 위에서 자지를 보지 구멍 안으로 쑤셔 넣을 때는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깊게 넣지를 못하고 엉덩이를 흔드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적당히 엉덩이만 흔들어 주면 되었고 자지 끝의 부드러움은 그녀의 보지 구멍 깊숙이 자궁까지 쉽게 와 닿았습니다.

간지러움이 있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그의 자지는 보지 구멍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고 그녀의 몸짓은 거기에 반응하여 격렬하게 흐르는 물줄기처럼 거세어지다가 또 잔잔한 시냇물처럼 약해지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흉내 낸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닌 자연스럽고 음탕한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왔습니다.

 

그녀는 낙지처럼 남자에게 달라붙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였었습니다.

쾌감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진저리를 치는 모습과 간드러지도록 흐느적거리며 달라붙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씹을 하는 것이 훨씬 쾌감을 증폭시키고 있었습니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 애타는 몸짓으로 좀 더 자기의 물건을 구멍 안으로 더 빨아들이기 위해 허리를 들어 올렸다가 가라앉는 행위들은 자기가 이전에 했던 반대의 행동이었고 이제는 자기가 그것을 마음대로 조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쁜 것은 드디어 이 여자를 내 소유로,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말했습니다.

 

"너는 샘터에서는 지배자인지 모르지만, 집에서는 내가 지배자야."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여자도 대답하였습니다.

 

"예. 앞으로는 시키는 대로 할게요 "

 

여자는 남자의 허리를 껴안고 자기 엉덩이를 최대한 들어 올리며 남자의 좆을 더 느끼려고만 했습니다.

 

이 신화의 요점은 남자가 했던 말,

 

“집에선 내가 지배자야”라는 마지막 말이며 그 뒤로 남자들은 항상 여자 위에 올라가기 좋아하고 우선 자가 되었으며 여자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신화가 주는 암시는 역시 샘터와 집이라는 대립적 구성이며 이것이 검증되리라는 기대 속에서 시작합니다.

여성적 장소인 샘터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무질서와 단순 유희에 지나지 않는 여자의 주도권에 의한 성적 행위와 하늘을 향해 벌리고 있는 여자의 가랑이 같은 수직적 기둥으로만 불가능하고 그 위에 대들보가-남성적인 힘-얹혀야만 완성되는 집은 사물의 질서, 위계질서가 확립된 공간입니다.

이렇게 사회적 질서와 인간에 의해 가공된 장소에서는 보지에 대한 확실한 지배와 복종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 하다"라는 영어 표현의 TO FUCK 은 "적으로 소유한다"

지배자로선 "종 한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남성들의 집요한 노력을 감히 치하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캐서린 맥키논 이라는 유명한 여성 학자도

 

"여성의 오르가즘이 남성에 대한 종속과 복종이라는 것에서 최고의 확인된 쾌락이기를 바라는 남성적 관점이 확인을 본 것은 분명히 옳다.

어쩌면 성적 괴롭힘은 전적으로 성적 소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다시 말해 성적 괴롭힘이란 말 그대로 소유, 순수한 상태에서 지배에의 순수한 확인만을 목적으로 남자들의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기분일 수도 있다."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여인네들의 풍만한 엉덩이를 보고 자지를 세우는 것은 남자의 본능적인 행동도 있겠지만 우리 선조들이 추구해주신 철학적으로 검증된 지배의 확인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변...............

 

빈자 소인은 어떤 회원님이 야.문의 인기 작가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작품을 읽고 젖어있었던 보지나 용틀임하던 자지가 제 글에 마르거나 위용을 잃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사정을 멈추는 것은 건강에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잠깐 쉬어가는 마음이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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